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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버릿지 웹스터(Beveridge Webster) - Piano

비버릿지 웹스터(Beveridge Webster)

비버릿지 웹스터는 소위 말하면 대중적인 인기나 콜렉터스 아이템에 속하는 피아니스트는 아니다. 단지 필자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중에 한 명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희귀연주자 목록에 올린다.

비 버릿지 웹스터(Beveridge Webster)는 1908년 5월 13일 미국 펜실바니아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5살 때 부터 피츠버그 음악원의 설립자이자 예술감독인 아버지로부터 피아노 교습을 받았다. 웹스터의 동생 Ferguson과 여동생 엘리자베스도 아버지로부터 똑같이 음악교습을 받았다. 1921년 웹스터는 가족들과 함께 파리로 이사를 가서 동생들과 함께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유명한 Isidor Philipp에게 사사한다. 웹스터는 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음악원 콩쿨에서 수상하고 바로 나디아 블랑제에게 작곡 교습을 받고 Fontainelbeau 미국 학교에서 Robert Casadesus에게 사사한다. 1922년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한 후 그는 파리에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여 1930년대 유럽 순회공연을 갖고, 베를린에서 슈나벨에게 몇 년동안 교습을 받는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웹스터는 모리스 라벨과 Jacques Durand, 드뷔시의 출판자등과 교우를 나누며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웹스터는 라벨과 밀접하게 교류를 나누며 실내악 연주에 출연하기도 하였고 특히 파리에서 전설적인 바이올리스트 사뮤엘 뒤시킨(Samuel Duskin)과 함께 라벨의 “치간느”를 세계 초연하기도 하였다. 웹스터는 자주 성악가 Nellie Melba와 함께 Durand의 작품들을 협연하였다. 파리에서 웹스터는 그 유명한 Hephzibah Menuhin, Yaltah Menuhin, Paul Jacobs등의 제자를 양성하였다. 또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교류를 나누면서 스트라빈스키 지휘의 음악회에 우정출연하기도 하였다.  


1934년 11월 그는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으로 맥도웰 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로 데뷔하였고, 같은 달에 뉴욕 카네기 홀에서 리사틀을 개최하였다.
웹스터는 미국의 메이져 오케스트라들과 실내악 연주자로서 유명한 미국의 실내악들과 협연하였다.
웹 스터의 레퍼토리는 바하에서 베토벤, 그리고 20세기 아방가르드 음악에 이르는 실로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갖고 있다. 특히 미국 출신의 연주자가 답지 않게 프랑스의 드뷔시와 라벨의 권위자로서 명성을 얻었고, 20세기 미국 작곡가들 엘리어트 카터, 로저 세션, 월리암 슈만, 루이즈 탈마, 로버트 헬프스, 그리고 데비이드 다이아몬드의 작품을 초연하였고, 작곡가들로부터 헌정받기도 하였다.

웹스터는 유럽권의 작곡가드르이 작품을 초연하는 녹음을 남기었는데, 알반 베르그, 아놀드 쉔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등의 작품을 녹음하였다.


웹 스터는 1940년부터 1946년까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교편생활을 하였고, 1946년 미국 줄리어드 스쿨에서 1990년 공식 은퇴할 때까지 이 학교에서 후진양성에 노력하였다. 또한 세계 여러 음악원의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세계 여러 음악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99년 웹스터는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