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오 구이(Vittorio Gui)
프랑스 음반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지휘자들을 살펴보면 칼 슈레히트, 데자르 에밀 잉게브레슈트, 콘스탄틴 실베스트리, 페르난드 오브라도스(Fernand Oubradous), 루돌프 캠페, 빅토리오 구이이다. 위에서 언급한 지휘자들은 사실 전세계적으로 스타급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었던 지휘자들은 아니지만 일부 매니아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지휘자들이었다. 특히 빅토리오 구이(Vittorio Gui)는 이태리 출신의 지휘자로서 교향곡분야보다는 오페라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었던 지휘자이다. 근래 빅토리오 구이의 희귀음반인 모차르트 교향곡 38번과 39번이 수록된 프랑스 HMV레이블에서 발매된 음반이 수집의 표적이 되면서 이 지휘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빅토리오 구이(Vittorio Gui)는 소위 유명인사로서 통하는 매혹적인 풍모를 가진 지휘자에 속하는 거장은 아니었지만 특별한 재능을 가진 지휘자이었다. 그는 20세기 중반을 풍미했던 위대한 성악가들의 음악성을 숙련시켜주는 지도자로서 또한 풍부한 음악적 감성으로 교향악을 조련하는 건실한 지휘자이기도 하였다. 오랜 오페라 지휘경력으로 그는 유명한 음악 페스티발의 창설과 활동에 헌신한 음악가이기도 하다.
1885년 9월 14일 이태리 로마에서 태어난 빅토리오 구이는 산타 체칠리아 로마 음악원에서 음악교육을 받고 그의 어머니로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 더불어 로마 대학에서 인문학과 작곡을 병행하며 학위를 수여받는다. 1907년 12월에 구이 잠시 로마의 Teatro Adriano 극장에서 'La Gioconda' 공연의 지휘를 맡게 된다. 이 공연이후 구이의 명성이 알려져 나폴리와 토리노에서 지휘자로서 데뷔를 하게 된다. 구이는 나폴리 산 카를로 오페라 극장의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어 1911년 유명한 토리노 엑스포 박람회와 1912년 로마의 Augusteo 축제에서 교향곡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연주회를 열어 많은 갈채를 받게 된다.
구이의 초기 활동경력은 소위 “젊은 토카니니”라는 닉네임이 따라 다닐 정도로 이태리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 또한 다양한 오페라 레퍼토리와 교향곡 작품들을 조련하는 대가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1923년 구이는 Teatro Torino 토리노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어 젊은 시절부터 지휘해온 작품들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직접 자신이 오페라 작품들의 제작과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토리노 극장에서 3년을 보낸 후 구이는 플로렌스에서 오케스트라를 창설하여 1933년부터 Maggio Musicale Fiorentino 음악 축제 페스티발을 개최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 해에 구이는 이태리 지휘자로서는 최초로 브루노 발터의 초대로 잘즈부르크 음악 페스티발에 참여하게 된다. 이 페스티발에서 유럽과 독일 음악팬들에게 이태리 오페라의 거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드뷔시와 브람스 교향곡의 뛰어난 해석자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1938년 구이는 코벤트 가든에서 영국 데뷔 연주회에서 ‘토스카, ’라보엠‘, ’리골레토‘를 지휘하여 영국 음악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또한 1952년 마리아 칼라스와의 협연으로 ’노르마‘를 지휘하여 미국 음악팬들에게 찬사를 받게 된다. 2차 세계대전중 그는 비엔나와 베를린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1948년 그는 Glyndebourne 음악 페스티발에 참여하여 모차르트와 로시니 작품을 연주하여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1952년 프리츠 부쉬의 죽음으로 인해 이 페스티발의 음악감독을 맡아 1964년까지 활동한다.
빅토리오 구이는 신인상파적인 스타일의 작품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이중 2개의 오페라 작품과 교향시와 몇 작품의 칸타타를 남기었다. 또한 그는 음악학자로서 몇몇 중요한 오페라 악보를 편집하기도 하였다. 빅토리오 구이는 1975년 10월 17일 이태리 피렌체에서 사망한다.
빅토리오 구이 사망이후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젊은 음악가의 등용문인 ‘빅토리오 구이’국제 실내악 콩쿠르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빅토리오 구이는 오페라 지휘 연보
1937 - Norma (Bellini)
1939 - Il trovatore (Verdi)
1940 - 1949
1949 - Nabucodonosor (Verdi)
1951 - Parsifal (Wagner)
1952 - Norma (Bellini)
1953 - La Cenerentola (Rossini)
1953 - L'amico Fritz (Mascagni)
1953 - M?? (Cherubini)
1955 - Mefistofele (Boito)
1955 - Le nozze di Figaro (Mozart)
1956 - Le Comte Ory (Rossini)
1959 - Le Comte Ory (Rossini)
1960 - Macbeth II (Verdi)
1962 - Il barbiere di Siviglia (Rossini)
1964 - Beatrice di Tenda (Bellini)
1967 - Alceste (Gluck)
1970 - 1979
1971 - La cambiale di matrimonio (Rossini)
빅토리오 구이는 교향곡 음반
Mozart Symphony No.38 "Prague" & No. 39
Vittorio Gui(Conductor)
Glyndebourne Festival Orchestra
LVDSM FALP 328 / France / LP
Vittorio Gui / Florence May Festival Orchestra:
Brahms: Academic Festival Overture REEL TAPE MASTER
Massenet: Under the Lindentrees REEL TAPE MASTER
Rossini: William Tell Overture REEL TAPE MASTER
프랑스 음반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지휘자들을 살펴보면 칼 슈레히트, 데자르 에밀 잉게브레슈트, 콘스탄틴 실베스트리, 페르난드 오브라도스(Fernand Oubradous), 루돌프 캠페, 빅토리오 구이이다. 위에서 언급한 지휘자들은 사실 전세계적으로 스타급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었던 지휘자들은 아니지만 일부 매니아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지휘자들이었다. 특히 빅토리오 구이(Vittorio Gui)는 이태리 출신의 지휘자로서 교향곡분야보다는 오페라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었던 지휘자이다. 근래 빅토리오 구이의 희귀음반인 모차르트 교향곡 38번과 39번이 수록된 프랑스 HMV레이블에서 발매된 음반이 수집의 표적이 되면서 이 지휘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빅토리오 구이(Vittorio Gui)는 소위 유명인사로서 통하는 매혹적인 풍모를 가진 지휘자에 속하는 거장은 아니었지만 특별한 재능을 가진 지휘자이었다. 그는 20세기 중반을 풍미했던 위대한 성악가들의 음악성을 숙련시켜주는 지도자로서 또한 풍부한 음악적 감성으로 교향악을 조련하는 건실한 지휘자이기도 하였다. 오랜 오페라 지휘경력으로 그는 유명한 음악 페스티발의 창설과 활동에 헌신한 음악가이기도 하다.
1885년 9월 14일 이태리 로마에서 태어난 빅토리오 구이는 산타 체칠리아 로마 음악원에서 음악교육을 받고 그의 어머니로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 더불어 로마 대학에서 인문학과 작곡을 병행하며 학위를 수여받는다. 1907년 12월에 구이 잠시 로마의 Teatro Adriano 극장에서 'La Gioconda' 공연의 지휘를 맡게 된다. 이 공연이후 구이의 명성이 알려져 나폴리와 토리노에서 지휘자로서 데뷔를 하게 된다. 구이는 나폴리 산 카를로 오페라 극장의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어 1911년 유명한 토리노 엑스포 박람회와 1912년 로마의 Augusteo 축제에서 교향곡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연주회를 열어 많은 갈채를 받게 된다.
구이의 초기 활동경력은 소위 “젊은 토카니니”라는 닉네임이 따라 다닐 정도로 이태리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 또한 다양한 오페라 레퍼토리와 교향곡 작품들을 조련하는 대가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1923년 구이는 Teatro Torino 토리노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어 젊은 시절부터 지휘해온 작품들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직접 자신이 오페라 작품들의 제작과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토리노 극장에서 3년을 보낸 후 구이는 플로렌스에서 오케스트라를 창설하여 1933년부터 Maggio Musicale Fiorentino 음악 축제 페스티발을 개최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 해에 구이는 이태리 지휘자로서는 최초로 브루노 발터의 초대로 잘즈부르크 음악 페스티발에 참여하게 된다. 이 페스티발에서 유럽과 독일 음악팬들에게 이태리 오페라의 거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드뷔시와 브람스 교향곡의 뛰어난 해석자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1938년 구이는 코벤트 가든에서 영국 데뷔 연주회에서 ‘토스카, ’라보엠‘, ’리골레토‘를 지휘하여 영국 음악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또한 1952년 마리아 칼라스와의 협연으로 ’노르마‘를 지휘하여 미국 음악팬들에게 찬사를 받게 된다. 2차 세계대전중 그는 비엔나와 베를린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1948년 그는 Glyndebourne 음악 페스티발에 참여하여 모차르트와 로시니 작품을 연주하여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1952년 프리츠 부쉬의 죽음으로 인해 이 페스티발의 음악감독을 맡아 1964년까지 활동한다.
빅토리오 구이는 신인상파적인 스타일의 작품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이중 2개의 오페라 작품과 교향시와 몇 작품의 칸타타를 남기었다. 또한 그는 음악학자로서 몇몇 중요한 오페라 악보를 편집하기도 하였다. 빅토리오 구이는 1975년 10월 17일 이태리 피렌체에서 사망한다.
빅토리오 구이 사망이후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젊은 음악가의 등용문인 ‘빅토리오 구이’국제 실내악 콩쿠르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빅토리오 구이는 오페라 지휘 연보
1937 - Norma (Bellini)
1939 - Il trovatore (Verdi)
1940 - 1949
1949 - Nabucodonosor (Verdi)
1951 - Parsifal (Wagner)
1952 - Norma (Bellini)
1953 - La Cenerentola (Rossini)
1953 - L'amico Fritz (Mascagni)
1953 - M?? (Cherubini)
1955 - Mefistofele (Boito)
1955 - Le nozze di Figaro (Mozart)
1956 - Le Comte Ory (Rossini)
1959 - Le Comte Ory (Rossini)
1960 - Macbeth II (Verdi)
1962 - Il barbiere di Siviglia (Rossini)
1964 - Beatrice di Tenda (Bellini)
1967 - Alceste (Gluck)
1970 - 1979
1971 - La cambiale di matrimonio (Rossini)
빅토리오 구이는 교향곡 음반
Mozart Symphony No.38 "Prague" & No. 39
Vittorio Gui(Conductor)
Glyndebourne Festival Orchestra
LVDSM FALP 328 / France / LP
Vittorio Gui / Florence May Festival Orchestra:
Brahms: Academic Festival Overture REEL TAPE MASTER
Massenet: Under the Lindentrees REEL TAPE MASTER
Rossini: William Tell Overture REEL TAPE 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