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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sip

거절하는 방법




무척 힘든 하루..

항상 이맘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엔 감기로 고생한다.
보기보단 잔병치레없는 체질인데 이상하게 항상 이맘때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목감기로 시작되어 온몸이 고열로 전이되는 양상은 동일하다. 이상하지..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목도리를 항상 두르고 가습기를 항상 틀어놓는데 말이야..

한달 정도 이비인후과병원을 들락거리면 서서히 낳게 되는데 그리곤 그냥 쭉 다음 해 봄까지 무사하다.
한겨울에 태어나 겨울을 가장 좋아하고 겨울에 그렇게 돌아다녀도 감기는 없는데 유독 환절기는 속수무책이다.

약기운으로 몽롱한 상태에서 오늘 촬영회를 갔다.
다행이 날씨는 사진찍기엔 더할 나위없이 좋았지만 몸상태는 정반대로 치닫고 있으니..

오늘 새벽 4시에 잠이 들었다가 중간에 몇 번깨고(Ann이 주말에 늦게까지 자고 있으면 내가 죽었나 확인한다.. ㅠㅠ) 몸 상태를 감안해서 일찌감치 준비를 했다.
세탁물 맡기고 지난 주 맡긴 것 찾아오고 세차장에 들러 차 맡기는 것은 토요일마다 항상 하는 일이다. 이때 아니면 시간이 없다.
세탁소 사장님은 지난 번 세탁물 이상하게 다림질한것에 대해 미안해 어쩔 줄 모르고..
악의로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에 그냥 넘어갔다.

흰 곱슬머리가 빛나는 세차장 사장님은 날 반겨주시고..
오늘도 사진찍으러 가?
넵 ㅎㅎ
돈도 안되는 거 뭣하러 그리 열심이야..
취미라니깐요.. ㅎㅎ
장가를 가야지.. 쯧쯧..
사람이 없다니까요.. 여자들이 날 싫어하나봐.. ㅎㅎ
눈이 높아서 그렇지 뭐..
저 눈 안높다니깐요.. 착하기만 하면 되는데.. 얼굴착하고, 몸매착하고.. ㅎㅎ
그게 눈 높은 거지..(기가 막히다는 듯..)
대신 전 나머지는 안보잖아요.. 전 과거도 용서할 수 있는데 못생긴건 용서가 안되요..
전 뭐든 이뻐야되요.. 고양이도..
뭐? 고양이도 길러?
저번에 얘기했자나요. 두마리랑 동거한다니깐.. ㅎㅎ
으이구.. 그러니 결혼을 할 수 있나..
대충 맞추고 살어..
그게요.. 안돼요.. ㅎㅎ
사장님과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사실 진심으로 얘기하기 싫고(내 몇 마디 말로 날 평가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예 이런 식으로 나간다.)
주의에서 결혼이야기만 나오면 말이다.
그래도 좋은 분이니 이런 식으로 농담을 하지 얘기하기 싫으면 대꾸도 하지 않는다.
타락천사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할까?
여명이 모르는 여자와 사진찍고 그 사진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보여주는 장면이 있지..

요즘 엔진오일 교환비는 얼마나 해요?(화제를 바꾸기 위해 딴 소리를 한다.)
뭐 지크는 3만5천원하고.. BMW는 얼마나 해?
BSI라구요.. 그냥 inspection 뜨면 무료로 교환해줘요.. 10만km까지요.. ㅎㅎ
그러니 우리같은 카센터가 장사가 안되지..
ㅎㅎ

세차하는 분이 저.. 세차 다됐는데요.
넵.. 주말잘보네세요.
주말의 시작은 이렇듯 유쾌하게 시작한다.

고난은 지금부터다.
몸상태도 안좋고 집에서 엎어지면 무릎이 닿을 거리에 있는 양재시민의숲으로 하면 얼마나 좋아..
아.. 오늘 MD에서 양재시민의숲에서 촬영회가 있지.. 음.. 할 수 없군..

별다방에서 커피랑 사과주스 챙기고 여유있게 출발.. 다행이 차는 안 막히고..
용산가족공원은 지난 주에 비해 가을 빛이 완연했고.. 햇살도 부드럽게 내리쬐고 있었다.
아직 30분이 남았다..
공원 벤취 한켠에는 4명의 여자아이들이 수다를 떨고 있는데 행색을 보니 코스어들이군..
오늘 날씨가 좋아 촬영온 팀들이 많겠군..

카메라 장비 세팅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가을 햇살을 보고 있자니 노곤해진다.. 온몸에서 땀이 나는데.. 오늘은 빨리 끝내고 집에가서 쉬어야겠다..

예정시각보다 약간 늦게 시작된 촬영회에서 난데없이 팔자에 없는 조장을 맡게 되었다.
조 인원을 보니 촬영회에서 자주 마주치는 분들이 없고 스튜디오 실장님이 내 얼굴을 아는 이유로 내가 당첨됐다..
본래 누가 부탁을 하면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ㅠㅠ
이 성격 고치려고 그렇게 노력하려고 해도 정작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누가 불쑥 부탁을 하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ㅠㅠ


다행이 잘 협조해줘서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전체 상황을 보여 진행을 해야 하기때문에 정작 내 사진은 별로 찍지 못했다. 사진이야 담에 또 찍으면 되고..
몸 상태가 안좋아 내색안하고 조용히 사진만 찍고 오려고 했던 계획에 엄청난 차질이 생긴 것이다.

촬영회는 마쳤고 일찌감치 카메라 정리하고 튈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어떤 분이 오늘 차 가지고 오신 분 중에 명동으로 가시는 분 없나요?
명.
동.

원래 지난 주 부터 신세계 분더샵 매니저가 신상품 들어온 거(내 스타일) 있으니 방문하라고 문자가 몇 번 왔었다. Brand day도 있으니 할인도 해주니 꼭 방문하시라.. 별도로 우편물로도 오고..
가야지 하고 생각은 했지만 요즘 계속 주말엔 촬영회가 있다보니 시간내기가 힘들어 미루고 있었다.

오늘도 몸상태만 좋아지면 가려고 생각은 했었는데..
명동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재차 모델분이 명동으로 급하게 가야하는데.. 어쩌구저쩌구..
제가 가는데요..
아! 잘됐네요. 잘부탁드려요..
네..

그렇게 다시 일정에도 없었던 명동을 가게됐다.
용산가족공원에서 명동이야 남산 1호터널만 넘으면 금방이니까 빨리 갔다오자..

명동역에 내려주고 신세계로 갔다.
신세계는 벌써 크리스마스 시즌 분위기를 내고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빨리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10월부터 차에서 듣는 CD 중 마티아스 괴르네의 슈베르트 겨울여행을 계속 버닝중인데..

매니저는 자리에 없었고 일단 한번 둘러봤다. F/W 시즌 상품 구색이 이제는 제법 들어왔군..
천천히 보고 있자니 스텝이 다가온다.
(새로온 친구이군..)
찾으시는 ...
매니저 어디 갔나요?
아.. 잠시 쉬러 내려가셨는데요.
저 왔다고 연락해주세요.
아.. 성함이..
저기 카운터 왼쪽에 있는 분 있죠? 그분한테 물어보세요.
아.. 알겠습니다.

신상품 중에 몇 가지 눈에 띄는 게 없었다. 마틴마르지엘라는 여전히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 싫고..
어디보자.. 어? 이게 괜찮겠는걸..
잠시 후 매니저가 환한 미소를 띄며 다가왔다.
잘 지내셨죠?
바빴어요.
예..
보여준다던..
아.. 예.. 여기 이쪽으로..
이 것 어때요?
일본 디자이너.. 누구누구가 만든 것인데 손님에게 아주 어울릴 것 같은데..
매니저 기다리며 훓터본 것 중 점찍어 놓은 것이다. ㅎㅎ
역시 이제는 내 취향을 완전히 파악했단 말이야..
지난 번에 그 바지 입으러고 권할 땐 미치겠더만..(왜 인심이 아주 짧은 바지 있자나.. 작년부터 하나씩 보이더니.. 올해는 여성용도 나왔던데..)

입어보죠..
역시.. 내 스타일이군..
마틴마르지엘라보단 덜 아방가르드적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릭 오웬스 정도 되는 스타일인데..
내가 좋아하는 니트 카디건인데 블루종처럼 앞은 지퍼처리 되어있고, 소매는 디올옴므처럼 길게 만들어 손가락 고리가 있는..
올 F/W Must have item이다.
손님 사이즈는 한장밖에 없어요..
이건.. 일본의 어쩌구저쩌구..
키미노리 모리시따는 안들어와요?
아.. 예..
거기 옷이 좋은데..


이건 하지.. 이건 말고 다른 건..
예.. 이쪽으로..
그 다음부터 소개해준 건 모두 한군데씩 맘에 안드는 구석이 있었다.
몸도 안좋아 더 쇼핑할 상태도 아니어서.. 이것만 계산해주세요.
근데 위층에 있던 MSF 신세계에선 모두 철수했죠?
예.
그럼 어디에 매장이 있어요?
거기 옷도 괜찮은 게 있는데 여기 신세계 스텝이 워낙 잘 챙겨주고 내 스타일을 잘 알아서..
압구정 겔러리아에 있고.. 아.. 거기 스텝 누구누구가 저희쪽으로 왔어요.
그래요?
어딨어요?
위층으로 가시면 있습니다.
네..
다음 주 행사 있으니까 다시 한번 나오세요.
네..
위층으로 갔더니 바로 그 스텝이 무지 반가워 하더군..
나도 반가워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옷을 한번 둘러봤는데 스텝이 여긴 손님 스타일은 없어요..
그런 것 같군요..
그래도 오셨으니 고객카드 만들어주세요.
아랫층에 내 고객카드 있는데.. 또 만들어요?
그래도 만들어주세요.
제가 손님 스타일 들어오면 연락드릴게요..
예.. 그러죠..

본의아니게 쇼핑을 하게됐지만.. 오늘 맘에 드는 옷을 사게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ㅎㅎ




P.S.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