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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review

볼프강 홀츠마이어 공연후기

역시나 뒤늦은 공연 후기

근래 심신이 피로하여 블로깅을 잠시 쉬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기다린 공연이었으므로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는 2006년 시작하여 이제 다섯번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6년 첫해에는 역시나 너무나 좋아하는 줄리어드 사중주단이 내한했었다.

당시 호암아트홀에서 공연이 진행되었고, 1층 로비에서는 악기전시회도 함께 진행되었는데 수 억을 호가하는 스트라디바리와 아마티, 과르네리 등의 명품을 직접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었다.

당시 전시회는 현장 판매도 가능했었는데 마침, 원매자가 있어 이들 악기를 원매자가 직접 연주해보고 진행자가 악기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는 행운을 가지기도 했다.

원매자가 그 악기를 샀는 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실제 바로 앞에서 연주되는 스트라디바리의 소리는 역시나 날카로웠다.

당시 기억이 워낙 생생해서 아직도 머리속에서 그 소리를 기억할 수 있다.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는 서울시에서 후원하고 서울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데 가장 큰 매리트는 역시나 좋아하는 장르인 실내악이란 점, 공공적인 성격의 프로그램으로 관람료가 거의 공짜에 가깝다는 점, 대중과 보다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해 야외 콘서트를 빼먹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매년 신선한 주제를 정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점 등이다.

올해는 “Unfinished Journey”(못다한 여정)이란 주제로 진행되었으며, 슈베르트의 작품이 많이 소개되었다.

 

다시 이번 공연으로 돌아와서, 올해 프로그램 중 가장 기대한 공연은 역시나 볼프강 홀츠마이어의 성악 공연이었다.

14일 슈베르트의 겨울여행(겨울나그네) 16일 아름다운 물방아간의 아가씨가 이틀 간 진행되었는데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하루 공연 만으로 만족하기엔 그 동안 기다린 시간이 너무 길었다.

홀츠마이어의 경우, 국내에서는 다소 지명도가 낮은 연주자라 할 수 있다.

온라인 음반점에서 검색해보면 20여 종이 검색되는데 상당수가 품절이다. 절판된 것은 아니고 수입을 하지 않는 것이다. , 수입업체에서는 수요가 없기 때문에 수입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음반을 구매하기 위해 해외 쇼핑몰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음반을 구할 수 있는 대로 전부 구했는데 그의 주요 레퍼토리는 역시나 슈베르트 가곡이다.

 

그를 알게 된 계기는 일본의 권위있는 하이파이 오디오 잡지인 스테레오 사운드필진 중 가장 영향력있는 스가노씨의 레퍼런스 음반 중 하나가 바로 홀츠마아이어의 겨울여행(겨울나그네)” 이었기 때문이다.

스가노씨가 평가한 오디오와 그의 오디오적 취향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와 동일한 음원으로 동일한 오디오 기기를 듣는 것이다.

이 음반은 이미 국내에서는 품절 상태여서 이 음반을 구하기 위해 결국 외국 쇼핑몰을 이용해야만 했다.

 

이후, 나의 레퍼런스 음반으로 오디오 기기의 성격을 판단할 때 항상 이용한다.

그 동안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 음반과 동일한 곡을 직접 듣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음반이 출시된 시기는 1999년이고 지금은 2010년이니 근 10년이 지난 셈이다.

당연히 전성기는 지났을 것이란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그 동안 나의 레퍼런스 음반의 주인공을 실연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앞서 말했듯이 국내 지명도가 낮아 음반도 계속 품절 상태인데 공연을 직접 볼 수 있으리란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기에..

 

첫 날 공연은 제일 앞 자리에서 그의 공연을 감상하기로 했다. 두번 째 공연은 음악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1층 뒤쪽 자리

맨 앞 자리는 음악을 감상하기엔 좋은 자리가 아니지만, 너무도 보고 싶었던 그였기에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당초 이와 같은 생각은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후회가 되기 시작했는데 이 이야기는 좀 있다 하기로 하겠다.

 

이번 공연은 세종체임버홀에서 진행되었는데 성악 공연을 하기에 적합한 크기이다. 공연장은 거의 찬 것 같아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클래식 공연계의 특성상 유명 연주자 이외에는 객석이 다 차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만석은 아니었지만, 90% 정도는 찬 듯 했다. 관람료가 싸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옆 자리에 세 명의 중학생이 와 앉고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직 공연 전이긴 했지만, 쉴 새없이 이야기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 사춘기의 남학생들이었기에 신경이 모두 그리로 향했다.

제발 공연 중에는 가만히 있어야 할 텐데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네 번째 곡이 끝나고 홀츠마이어가 Please.. 를 외치기까지 했으니ㅠㅠ

물론, 떠든 것은 아닌데 바로 앞에 앉아서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꼼지락꼼지락 거리니 집중이 될 수 있나

이 후 자신도 부끄러웠는 지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가만히 있더니 나중에는 잠이 들었다. 하지만, 공연 후반부에 다시 꼼지락 거리기 시작해서 내가 또다시 주의를 줘야만 했다.

 

세 명의 학생들은 아마도 공연 초대권을 받아 왔으리라

오랜 경험 상 클래식 공연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인물들이 공연장에 보이면 100% 초대권을 받아 온 것이다.

 

홀츠마이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으니 이미 좋은 공연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정상급 연주자답게 공연은 무리없이 마무리했다.

하지만, 공연내내 그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처음 무대에 올라왔을 때 그의 얼굴을 보고 음반 자켓의 사진과 너무나 늙어버린 그여서 다소 놀랐다. 하긴.. 10년이 지났으니..

키는 180정도였고, 머리는 대부분이 흰색이었고, 따로 염색은 하지 않았다.

얼굴은 작고, 코는 오똑하고, 눈은 깊숙히 들어간 뺨은 다소 붉은 전형적인 북반구 서양인의 모습이었다.

공항에서 바로 왔는 지 턱시도가 아닌 일반 양복에 구두는 한 동안 닦지 않은 듯 뿌옇다.

 

물론, 성악 공연은 턱시도를 입지 않고 편한 티셔츠 차림으로도 종종 하기에 놀라운 광경은 아니지만..

 

홀츠마이어와 나와의 거리는 채 5미터도 되지 않았다. 공연 내내 그와 눈이 몇 번이나 마주쳤는 지 모르겠다.

마주칠 때마다 부끄러워 눈을 피해버리곤 했다.

이게 바로 생각 지 못했던 불편한 상황이었다.

너무도 그를 좋아해서 그렇게 가까이서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도망치고 싶었다. ㅠㅠ

 

그는 매우 제스처가 풍부해서 곡의 성격, 가사에 따라 활발히 움직이는 타입이었다. 그러면서 객석을 자주 쳐다보곤 했는데 이럴 때 그와 눈이 자주 마주치는 것이다.

 

좀 더 멀리서 관람했다면 이런 것에 대해 신경이 쓰이진 않았을텐데

몇 번을 마주치고 나니 익숙해졌고 이후 편히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다행이 두 번째 공연은 일층 뒤쪽 자리여서 이런 불편함은 없었다.

 

홀츠마이어는 원래 바리톤이지만, 테너로 착각할 정도로 음역이 높다.

실연을 들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굳어졌다. 더구나 바로 앞에서 들으니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까마귀'에서 다소 고음에서의 부자연스러움과 음정의 불안정은 몇 군데 있었지만, 그의 나이와 오랜 비행시간 등을 고려하면 컨디션이 최상이 아님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타고난 미성과 정확한 딕션, 긴 호흡, 풍부한 경험에서 오는 여유로움과 부드러움

고음을 낼 때 특유의 자세..

턱을 당기고 등을 살짝 구부리며 앞쪽을 향하는

그의 컨디션이 최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초고가의 오디오에서 음반으로 듣는 소리보다 훨씬 좋았다.

그리고, 두번 째 공연은 첫 날 공연보다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앵콜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세번의 커튼콜 후 총총히 무대를 떠났다.

(두번 째 공연은 두 곡의 앵콜곡을 불렀다.)

 

이제 점점 과거의 명연주자를 볼 기회가 줄어든다.

아마 다시 그런 기회가 올까.. 없을거다. 하지만 봤으니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사인을 받으려고 했을텐데 이젠 나이도 들어 그런 짓은 하지 않게 되고 가슴과 머리와 눈과 귀에 꼭꼭 담아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