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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review

오페라 "가면무도회" 공연후기

잠시 이번 공연의 기획 배경부터 살펴보면 올해가 이탈리아와의 수교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술의 전당에서는 2005년 첫 오페라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라고 할 수 있는 베르디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이태리는 오페라 작곡가들이 많지만... 베르디는 가히 국민 작곡가로 불릴 만큼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인물이지요.

그리고 그의 수 많은 작품 중 '가면무도회'를 선택했습니다. 많은 지명도를 가지고 자주 연주되는 작품들에(라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아이다...) 비하면 분명 자주 공연되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선택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가면무도회'를 선택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번 연출을 맡은 이소영씨가 2001년에 국내 초연을 올렸었는데 당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기획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베르디의 작품들 중 '가면무도회'가 차지하는 위치를 살펴보면, 베르디의 오페라 작품을 제작시기로 나열해놓고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한다면 본 '가면무도회'는 중기 오페라에 해당합니다. 베르디 본인 또한 본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합니다.

'가면무도회'는 '스웨덴 국왕인 구스타프 3세의 암살 사건'이라는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거기서 모티브만 차용했을 뿐 실제 구스타프 3세가 신하(친구)의 아내를 사모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

CD 전곡반으로는 대략 10종 정도가 나와있습니다. 좀처럼 무대에 올려지지 않는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죠. 대략 말씀 드리면 질리-세라핀, 토스카니니-메릴, 보토-칼라스, 바르톨레티-테발디, 카라얀-조수미, 무티-도밍고(EMI), 아바도-도밍고(DG), 솔티-베르곤지(LONDON), 솔티-파바로티, 가바쩨니-스텔라(DG) 등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05년 첫 오페라로 어떤 오페라를 볼 것인지 프로그램 선정에 고민을 많이 했고 '가면무도회'는 자주 무대에 올려지지 않는 작품이기에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물론 언제나처럼 공연을 보러 가기 전 CD와 LP를 통해 다시 감각을 키웠구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우선 3막으로 구성된 작품이며 대략적인 연주시간은 2시간 10분 정도입니다.

오페라의 배경은 '보스톤'이며 중세 봉건제도하의 스페인의 제후국에 해당하는 조그마한 나라인 '보스톤'의 총독(리카르도)과 그의 친구이자 절대적인 충성을 다하는 신하(레나토), 그리고 그의 아내(아멜리아)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가 극의 줄거리입니다. 이 기본 줄거리에 총독을 암살하고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늘 그의 주변을 맴도는 반역무리가 극의 또 한 축을 이끕니다. 이렇듯 플롯은 대단히 간단합니다.

하지만 오페라 치고는 나름대로 구성을 탄탄하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를테면 극의 전개상 반역무리가 지속적으로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모반을 꾀한다는 것을 총독이 사전에 인지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멜리아가 암살의 위험을 예고했음에도 처연히 '가면무도회'를 개최하게 되는 것이 극의 전개상 자연스럽게 됩니다.

여기에서 '가면무도회'는 비극적 결말을 끌어내기 위한 장소이자 극적 긴장감을 배가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됩니다. 암살하려는 레나토가 변장을 한 리카르도를 찾기 위해 애쓰고 리카르도는 변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아멜리아와 이별을 고하는... 그러다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입니다.

아멜리아와 리카르도 사이의 사랑과 그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을 잊기 위한 서로의 노력, 하지만 둘 사이의 사랑만 확인하고 결국 리카르도는 아멜리아와 레나토를 본 국으로 돌려보냄으로써 그의 사랑을 완성하려 합니다. 마녀의 예언이 있었지만 처연하게 '가면무도회'를 개최하고 스스로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분노에 눈먼 레나토의 칼에 찔려 죽음을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레나토에게 용서를 빌고 둘의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이었음을 밝혀 아멜리아의 명예를 찾아주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번 공연은 연출을 맡은 이소영씨의 연출 솜씨가 돋보이는 무대였습니다. 이미 2001년에 연출한 바 있지만 이번에 보다 더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대세트, 무대장치(갑자기 뒷쪽 스크린에 커다란 사람의 눈이 나타난다든지..), 출연진의 의상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무대는 상징성 위주로 세팅을 해서 상당히 모던합니다. 특히 2막의 사형장의 씬은 아주 높고 바닥이 비스듬한(그래서 그 위에 서있기조차 위태로운)세트에 바닥을 붉은 카페트로 깔아 그들의 위태롭고 위험한 상황을 간결하게 잘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면무도회의 장면은 대단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주더군요. 붉은색의 꽃가루가 하늘거리며 내려와 무대바닥에 쌓여 이리저리 뒹굴고 무대의 무희들도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장면은 동화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이었습니다.

다음은 출연진에 대한 소개입니다.

저는 첫날 공연을 봤습니다. 이번 공연은 주역이 더블캐스팅이므로 제가 본 공연은 리카르도역(체사레 카타니), 아멜리아역(가브리엘라 모리지), 레나토역(강형규) 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A팀이었습니다.

우선, 리카르도 역을 맡은 체사레 카타니는 이탈리아 출신답게 자연스러운 딕션과 맑은 목소리, 별도 분장이 필요없을 정도의 대단히 잘생긴 마스크로 기본 점수를 따고 들어갑니다. 연기도 자연스럽구요. 문제는 가창력입니다. 우선 목소리는 맑고 감정표현도 참 좋습니다만 목소리가 약하더군요. 이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그리고 가장 널리 알려진 아멜리아와의 이중창을 부르는 부분에서는 그다지 고음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무리를 해서인지 삑사리가 나더군요. 그리고 두어 번 정도 더 고음에서 삑사리가 나더니 자신감을 상실해서인지 아님 목소리가 안나와서인지 나머지 부분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더군요. 이 이중창이 꽤 긴편인데 후반부는 거의 여성 솔로로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3막에서 죽기 전의 솔로에서는 제가 다 긴장이 되더군요. 삑사리 낼까봐... ^^ 하긴 이곳에서도 고음부에서 불안하게 약간 늘어졌지만 앞선 경우보다는 낳았습니다. 동호회에서 이 날 공연을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더군요. 근데 저는 그리 탓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전체적으로 공연을 망칠 정도의 형편없는 정도는 아니었고 이 또한 실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이겠지요. 파바로티도 실제 공연에서 삑사리를 내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아멜리아역의 '가브리엘라 모리지'는 처음 1막에서는 좀 불안하더군요. 근데 뒤로 갈수록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잘 하더군요. 3막의 유명 아리아인 'Morro, ma prima in grazia'는 괜찮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외국 배우답게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니까요… 하지만 여지껏 제가 본 외국 여배우들과 비교하자면 조금 떨어지는 편입니다. 특별히 잘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더군요. 그냥 무난한 정도였습니다. 또한 리카르도가 못 받쳐주니까 같이 못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번 공연에서 MVP를 뽑으라면 단연코 레나토역의 강형규씨라고 생각됩니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소리에서도 판가름이 나더군요.

하긴 상대배역들이 죽을 쑤는 바람에 더 돋보이기도 했습니다만 실제로도 아주 잘했습니다. 목소리도 맑고 안정적이고 감정표현도 좋았습니다. 바리톤 특유의 무거우면서도 낮게 깔리는 안정된 소리, 고음에서 강하게 전달되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참 마음에 들더군요. 특히 3막의 'Eri tu' '에리뚜'는 이번 공연 전체에서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충성을 다짐한 믿었던 친구와 사랑하는 아내에게 동시에 배반당한 울분과 분노를 잘 표현했습니다. 물론 가창력 훌륭 훌륭...(스노우캣 버전 ^^)

이번 공연에서 '에리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더군요... ^^

그 외 울리카역을 맡은 이아경씨도 좋았습니다. 여성의 낮은 음은 높은 음과는 또 다른 상당한 매력이 있죠. 배반자 무리인 베이스 파트를 맡은 한국 배우들도 좋았습니다. 대신 오스카는 좀 깨더군요. 호흡이 짧아서인지 음을 놓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더군요. 원래 보이소프라노가 맡는 역할인데…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이던데 글쎄요...

전체적으로 한국 배우들의 성과가 높은 공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는지는 출연 배우들의 동작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미리 짜여진 동선과 동작을 얼마나 되풀이 연습을 했는지 딱딱 들어 맞더군요. 배우들도 연기를 함에 있어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정해진 동선과 동작을 하는 것이 눈에 보이더군요. 전체적인 연기 지도는 아주 깔끔했습니다. 이소영씨가 세세하게 지도를 하는 편이던데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나중엔 '이소영의 가면무도회'라고 타이틀이 올라오지 않을까요?